그외/오타쿠

중얼중얼...

logmemo 2023. 1. 26. 08:33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와서 무슨 글을 썼는지 당시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작품을 봤는지 떠올려보는데 날짜를 보다가 22년에 블로그에 아무 글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소하게 놀랐다
아니... 작년에 그 정도로 게으르게 살았나? 아...딱히 현생에서 이룬 것도 없는데
아무튼 전보다 블로그를 좀 더 활성화해서 사용해보려고 한다...
아무래도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되는대로 내뱉는거보다 좀 정리해서 하는게 나은거 같다




한때 여러가지 생각을 정돈하려고 백합이나 여자 주인공이 주로 나오는 작품을 줄줄이 보면서 납득할 수 있는 창작이란 뭘지... 혼자 고민을 엄청 햇는데
뭔가를 생각하고 고민한다는 행위자체가 괴로워서 한동안 안 하다가 최근 다시 생각에 잠긴 모드로 돌아온거 같다...

난 굳이 완벽하지 않아도 여자 많이 나오는 진지한 이야기면 대부분 좋아한다 (애초에 창작물에 옳다 그르다 완벽하다...는 평가를 내리는게 좀... 너나 잘하세요 이런 소리 나오고 그런다)

근데 오타쿠들은 여자가 많이 나올수록 도덕적 윤리적 부분에서 무결해야 한다는 강박아닌 강박? 이라 해야하나... 멋대로 기대 같은 거 하면서 보고 자기혼자 실망해서 막 화를 낸다
이게 왜 좋지 않냐고 생각하냐면 과거의 내 모습이기 때문에... 그래서 무슨 심정으로 기대하고 보는건지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이런 풍조가 있기 때문에... 창작자로서 리스크를 지기 싫으니까 여성이 주가 되는 작품을 안 만드려는 경우도 생긴다
그냥 내가 멋대로 넘겨짚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 꽤 봤다

창작자에게 작품이란 자신을 대변하는 무언가인데 아무리 봐달라고 세상에 내놨다 한들 거기에 따라오는 비판에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인간이 가장 민감한 도덕과 윤리의 잣대를 들이밀면서...

남자가 주로 나오는 작품에는 '아 근데 빻았어요' 라는 사족 잘 안 붙이면서 말이다.

여자들이 보기 힘들 소재나 노출, 연출... 그런건 확실히 여캐가 많이 나오는 작품에 자주 등장하고 어쩌면 그런 류의 비판은 피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근데 자신만의 도덕적 윤리적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는 작품은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면서 그저 입맛에 맞는 내용만 취급하는 작품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건 좀 오만이라는 얘기를 하고싶은거임...




아무튼... 이런 분위기에 대한 불만이 조금씩 쌓여갈 때 즈음 웹자친구로 유명한 청건 작가가 작품을 어떻게 기획하게 됐는지 인터뷰한 내용을 봤다. 내용은 이렇다.
 
 

2014년에 발표된 <크로스 앙쥬 천사와 용의 윤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이하 <앙쥬>) 그 애니메이션…  
성우 캐스팅이 초호화인 것도 모자라, 작화진에는 기무라 다카히로 감독이 있는 게 아닌가! 캐릭터 시트를 보자마자 <앙쥬>가 <가오가이거>와 <코드기어스>의 정통 후예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방영일을 손꼽아 기다렸고 그렇게 기다린 1화의 임팩트가 굉장했기 때문에 드디어 제대로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불명 티팬티와 노출 장면들은 연막일 뿐이고 ‘진짜’가 있을 거라 기대하며 버텼다.  
근데 생각보다 연막이 너무 거셌다.  
한 달쯤 지나니까 정신이 무너져서 결국은 매주 하차와 승차를 반복하며 다음 화를 보느니 눈을 찌른다는 폭언을 일삼고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가끔 맘에 드는 장면이 있으면 찬양하기도 했지만 거의 욕하느라 시간을 쓴 것 같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한 비화를 접했다. 사실 <앙쥬>에는 지금보다 훨씬 망측한 장면이 많았는데, 거기서 일하는 여자 스태프들의 의견으로 제작 전 자체 조정을 거친 후 방영이 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보는 <앙쥬>는 이미 한 차례 필터를 거쳐 내놓아진 상태였던 것이다!  
내가 화풀이를 해대는 동안 이미 누군가는 안 보이는 곳에서, 뒤에서<앙쥬>를 바꾸기 위해 노력중이었다.  
그 비화를 듣고 나니 확실히 스태프들의 분투가 장면마다 오버랩되어 보이는 듯했고 사소한 걸로 트집 잡으며 불평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원하는 게 있으면 참여해서 흐름을 바꾸면 되는 거구나 싶었다.  
(중략) 사실 내가 접한 <앙쥬> 제작 현장에 대한 비화는 SNS에서 일본어로 작성된 글을 본 것이라 맞게 해석했는지, 정말 그랬는지 사실 여부는 정확히 모른다. 다시 찾아보려니 원 글도 찾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 작품이 내 웹툰 연재의 계기가 된 것은 거의 틀림없다. 나는 원래 집에 있으면 내 방에서 불 끄고 문 닫고 천장만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의욕이 없었다. 그 애니가 나를 불태웠기 때문에 연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차기작을 시작하기 전에도 한번 정주행하려고 한다.

요약하자면... '앙쥬를 한껏 기대하면서 봤는데 망측한 장면이 너무 많이 나와서 내심 불평하며 작품을 깎아내리던 와중 앙쥬 제작비화를 보게 됐다. 사실 앙쥬 원안은 지금보다 훨씬 그런 장면이 많았고 내가 보는 앙쥬는 여성 스태프들에 의해 한번 필터링된 결과물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화풀이를 해대는 동안 누군가는 뒤에서 앙쥬를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참여해서 흐름을 바꾸면 되는구나 느꼈다.'

정말 말 그대로다... 오타쿠 대부분이 직접 참여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의지는 없으면서 자신의 얄팍한 시선으로 너무 쉽게 비난을 하는거 같다.
취향을 존중하라던지, 기분 안 나쁘게 말해라... 이런 차원의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자신이 어떤 부분이 불편한지, 왜 그렇게 느끼는지에 대한 고찰도 없으면서 섣불리 아 이거 빻았네, 라는 말로 일축시키면, 그게 나비효과가 돼서 여성 캐릭터가 주로 나오는 작품에 대한 검열이 된다.
여성을 주로 한 작품들은 지금 과도기에 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런데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입으로 불평만 늘어놓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해 본 적 없나?

적어도 자신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느끼면
빻음 등등의 편리한 단어로 비난하지 말고 전은 이렇고 후는 이렇기 때문에 이러이러하다... 정도의 논리를 전개하는 노력은 해야지

아니면 차라리 취향이 아니거나 본능적으로 거북해서 싫다고 하시길...
절대적이지도 않고 기준도 모호한 자기만의 윤리관을 들이대며 방구석에서 무결함에 대해 대법관질하는 건 비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