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기타

아오노 군에게 닿고 싶으니까 죽고 싶어

logmemo 2023. 3. 2. 07:18


https://youtu.be/HSrAK2LkdM8

 

소장 인증

애니메이션화도 안 된 만화 감상문은 처음 쓰는 것 같다. 아예 만화 감상문 자체가 처음인 것 같기도...
단순히 만화보다 애니메이션이 더 좋아서 그렇다는 이유도 있지만 감상이니 뭐니 구구절절 늘어놓을 정도로 만화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쓸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된 만화라 이 생각들을 어디라도 터놓고 싶어서 쓴다.
 
오타쿠나 만화 매니아 사이에서 꽤 유명한 작품이라 볼 사람은 거의 봤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 만화가 그렇게 명작이라는 평을 듣고 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만화의 짤방이 돌아다녀도 볼 생각조차 하지않았다.
제목을 보고 요즘 유행하는 문장형 제목이네, 어짜피 또 억지눈물 짜내는 로맨스물이겠지? 하는 편견이 생겨서
그닥 보고싶지 않은 만화였다.


그런 내가 이 만화를 보기로 결심한 건 어린시절 가정 문제로 큰 결핍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이끌어가는 '호러물' 이라는 걸 알고 나서부터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사실 이런 류의 불쾌감을 주는 만화를 꽤 좋아하고 그 감각을 즐기는 편이다. 이런 분위기의 만화를 읽고 나면 재미없다/재미있다 라는 이분법적인 감상이 잘 나오지 않는다.
뭐라고 명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고 이 감정 때문에 작품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완진히 떨쳐내지 못한다. 그런 묘한 감정이 이 만화를 계속 떠올리게 만들고, 드문드문 생각나다가 어느새 집착하게 된다. 하루종일 이 만화에 대한 것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부정했었다. 재미가 없다는 게 아니지만 너무 기분나빠! 왜 저런 기분나쁜 감정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거지? 불쾌해! 가 첫 감상이었다. 그러나 내용이 점점 진행되고 머릿속의 혼란한 감정들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하자 아 이 만화는 잘 만든 만화고 꽤 내 취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아오노 군에게 닿고 싶으니까 죽고 싶어' 는 흔한 문장형 제목을 가진 로맨스물이 아니다. 다른 문장형 제목을 가진 작품들은 딱히 작품의 키워드를 정리할 단어 제목을 찾을 수 없으니까/제목으로 어그로를 끌어야 하니까 그렇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만화에서 '아오노 군에게' '닿고 싶으니까' '죽고 싶어' 는 전부 만화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주인공 카리야 유리는 소심하지만 남의 눈치를 본다거나 움츠러들며 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만의 주관도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는 심각한 애정결핍의 소유자로, '남자애랑 처음 말해봤다' 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와의 교제까지 상상하는 비상식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마치 여자애한테 조금 상냥하게 대해졌다고 결혼까지 생각하는 찐따남처럼 말이다. 여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여자들은 항상 주제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온몸에 두르고 다니기 때문이다. 아오노군이 로맨스물 중에 굳이 따지자면 여성향에 해당하기 때문에 남녀의 사고방식이 반전된 걸까? 그건 아니다. 여성으로 자랐음에도 이런 사고방식으로 남을 대하는 건 유리가 애정결핍이라는 증거다.

아무튼, 유리는 아주 사소한 계기로 아오노 류헤이를 좋아하게 되고 그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기고 싶다는 이유로 고백한다. 그리고 교제하면서 그와 만나기 전까지는 어떻게 살아왔었는지조차 잊을 정도로 행복하게 지내지만, 2주 뒤, 아오노가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살아가는 이유나 다름없었던 아오노가 죽게 되자 유리는 자살을 결심하고, 곧이어 그녀의 눈앞에 죽은 남자친구 아오노 류헤이의 유령이 나타난다. 유리는 그를 껴안아보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만지지 못하고 힘없이 넘어진다. 그리고 또다시 자살하려 한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아오노 군에게 닿고 싶으니까 죽고 싶어' 인 것이다.

아오노의 죽음으로 흥분한 유리와 서로 닿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둘은 배게나 전봇대, 유리의 손가락 등을 이용해 스킨십을 하곤 하는데, 그러던 와중 유리에게 대가를 요구하며 해를 끼치려는 악령 아오노군이 나타나며 호러 만화로서의 전개가 시작된다.



아오노군은 일단 호러 만화이다. 호러 요소가 나올 때마다 설명이 너무 길어서 자세히 읽지는 않았지만 (ㅈㅅㅋㅋ;) 주연이 유령이니 만큼 호러라는 장르에 충실한 전개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만화의 제일 무서운 점은 네목님 같은 악령의 존재나 미신의 실체화가 아니라, 가정에서 당하는 정서적 폭력을 마치 여느때와 같은 일상인 듯 당연시하며 살아가는 주인공과, 그들의 뒤틀린 애착관계 형성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유리는 애정결핍이 있다. 그리고 그것의 원인은 어렸을 때부터 당연하다는 듯 겪어온 가정폭력이다.
유리의 언니 미도리는 어릴 적 첫째 오빠가 죽은 뒤 방치하듯 키워져 부모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고, 그 탓에 비뚤어져 유리의 인간관계를 다 박살내 버린다. 그러니까 유리가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와준 아오노를 좋아하게 된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듯 이 만화는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의 만남이 순정만화의 운명적인 클리셰인듯 어물쩡 넘기면서도 '실은 이 인물의 이러이러한 결핍 때문에 그랬다' 며 떡밥을 회수한다. 유리가 유령 아오노에게 몸도 마음도 다 바치고 생명마저 빼앗기고 있는 이 국면이 가족의 학대가 불러일으킨 나비효과라니 소름돋지 않는가? 나는 이게 아오노군의 가장 공포스러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런 미도리에게 죄책감을 품은 엄마는 미도리가 유리에게 폭력을 휘둘러도 방관하며 어떨 때는 폭력에 가담한다.
비슷한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아오노는 유리의 학대현장을 보며 이건 잘못된거다, 못 하게 해야한다며 단언하지만 유리는 그 상황을 회피하고 가족들을 감싸기에 급급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폭력에 노출된 사람에게는 그게 너무 당연하고, 그에 저항하는 것 보다 순응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오노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아오노가 유리에게 한 말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런 말이 유행하지 않던가. '정신병자끼리 같이 있으면 안 된다, 서로를 망친다.' 혹은 '사람 구원삼지 말고 정신병원에나 가라' 그러나 '정신병자' 니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때도 있다.
'정신병자'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학대를 겪어온 사람들이고, 그만큼 타인이 자신에게 휘두르는 학대에 둔감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학대를 당하는 모습을 보면 바로 '이건 있어서는 안되는 일' 이라고 깨닫는다.
 
아오노에 의해 자신이 학대 당한다는 것을 자각한 유리는 말한다.
 

"내 가족,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해. 아오노 군이 가르쳐 준 날부터 혹시 우리 가족 좀 지독한가? 라는 생각을 가졌더니 조금씩 마음으로 퍼져가서 그래, 지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오노 군, 못 배우고 자란 건 나야. 이상한 집에서 자라서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이런 나라서 제일 소중하게 아끼고 싶었던 널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던 건지도 몰라.
미안해..."

 
후지모토도 아오노와 마찬가지로 유리를 좋아하고, 그녀가 학대당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렇게 말한다. 
 

"...전에 험하게 키워져서 이상한 인간이 됐다고 그랬지만 유리는 전혀 이상한 인간이 아니고, ...가족은 가족이니까 언젠가 서로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후지모토의 말을 들은 유리는 뭔가를 상실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작가가 어떤 설정으로 만들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후지모토는 적어도 정상적인 가족 아래에서 자란 인물이고, 학대에 익숙하지 않다. 이런 사람은 학대받아온 사람의 아픔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아오노는 '네 언니와 엄마는 지독한 사람이다' 라고 유리에게 말해줄 수 있지만, 후지모토는 기껏해야 '아깐 네 가족이 좀 심했네. 나중에 잘 화해하길 바라.' 정도의 말밖에 못한다는 것이다. 

후지모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왜 그자식은 되고 나는 안되는데!!' 의 해답은 여기에 있다.
 

 "아오노 군, <반짝반짝 작은 별>을 치든 못 치든, 휘파람을 불 수 있든 없든, 물구나무 서기를 할 수 있든 없든, 한자 시험에서 만점을 받든 안 받든, 널 좋아해."

 
이것이 유리의 '좋아해' 이다. 그리고 유리는 자신은 누군가를 제대로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유가 있어서 상대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기만 하면 되는대로 이유를 갖다붙이고 멋대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 사람이라면 상대가 내가 준 애정을 그대로 돌려주었으면 하고 내심 바라며 자신이 상대를 이해했듯 상대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후지모토는 유리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다.

후지모토의 유리를 좋아하는 마음은 고작 '내가 좋아하는 유리는 이상한 인간이 아니다' 정도로 끝난다.
'유리가 이상한 인간이어도 유리를 좋아해' 가 아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후지모토는 결핍이 없기 때문에 아오노를 대신할 수 없다. 
 
그렇기에  유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오노밖에 없고,아오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유리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오노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유리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리는 이 사실을 아오노가 죽은 뒤에 깨달았기 때문에 그에게 강한 애착을 느끼는 게 아닐까?
아오노가 죽지 않고 계속 살아있었어도 아오노와 유리가 서로 이렇게까지 이해하며 끈끈한 사랑을 나눌 수 있었을까? 아마 아오노가 죽는 일이 없었더라면 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헤어지고 지난 일을 그저 해프닝처럼 추억하는 관계가 되진 않았을까?
아오노군은 이런 가정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게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의문이 공포심이 되도록 만든다.
 


어쩌면 아오노군은 호러물을 표방하고 있지만 미성숙하고, 그렇게 자랄 수 밖에 없었던 청소년의 상처를 들춰 보여주면서 그들이 아름답게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처럼) 만나고 이별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아오노에게 닿지 못했든 닿게 되든, 결국 마지막에 두 사람은 이별하는 전개로 끝이 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금 원어판은 남은 떡밥이 서서히 풀리고 있기 때문에 완결이 나면 다 읽고서 감상을 한번 더 써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