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이낙스 출신 애니메이터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트리거는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회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치만 이 작품 발표했을 때 큰 기대는 별로 없었고... 실제로 방영하고 한참 지나서 봤다 작년인가 재작년쯤 봤으니

특촬물에 딱히 박식하지도 않고... 가이낙스-트리거의 감성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메카나 로봇을 좋아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서 정말 순수하게 제작사에 대한 애정으로만 본 작품이었다
사실 남자 주인공 메인에 마치 장식용이나 간판처럼 오타쿠들 모으는 용도로만 만들어진것 같은 서브 여성 캐릭터... 그리고 메인은 특촬물이라는
좋게 말하면 전형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구린 작품구도에 질려서 볼 생각 없었는데
평이 괜찮기도 했고, 트리거에서 고작 1년에 애니 두 개씩밖에 안 나오는데 그냥 틀어놓기라도 하자...라는 마인드로 보기 시작했다가 뒷통수를 세게 맞고말았다
무슨... 그림이나 장르나 캐릭터나 당연히 저 앞에있는 남캐 둘한테 여캐 한명씩 붙여줄것처럼 생겨놓고 (욕 아님) 이게 대체 뭐지?
심지어 중후반까지 와서도 눈치 못챘음
마지막화의 거의 마지막에 와서야 알아챔 이건 특촬물의 탈을 쓴 백합이고 나는 바보라는 걸

아무 정보 없이 봤기 때문에 그냥 전형적인 소년만화라고 생각했음
소년만화는 무조건 남자한테는 여자가 붙어있어야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서로 좋아하든말든 응당 그래야한다고 생각함
그래서 소년만화여캐는 대부분 사람같지가않음 주인공이 하는말에 네네좋아요 저는다좋아요 뭐든좋아요 하는 응답머신,시리같음 너무 작위적임...
여튼 소년만화에서 여캐는 주인공을 돋보이게하기위한 장식같은 취급을 받기때문에 아카네랑 릿카도 당연히 그런 조연이라고 생각했다
웃긴게 한명은 가슴 한명은 허벅지를 강조해서 그려놨음... 그래서 가슴파와 허벅지파 쿨뷰티파와 하라구로파를 동시에 공략하기위한 전략이라고 생각함

그랬기 때문에 처음엔 아카네가 릿카에게 호감을 갖고있을거란 생각을 아예 안했었다. 반대도 마찬가지
위에 첨부한 장면도 히로인끼리의 남자 주인공을 독차지하기 위한 견제 중 하나(ㅋㅋ)라고 생각했지 정말 릿카에게 관심이 있어서 저러는거라는 생각을 안했음...
왜냐면 남녀 러브라인이 뻔히 존재하는 소년만화에서 두 히로인을 엮는,
국밥집가서 파스타를찾는 ㅂㅅ오타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편견을 갖고 본것도 있지만 릿카와 아카네 사이에 왠지모를 쎄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더 그랬음
남-남 이나 남-여 관계에선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대화도 여-여 로 바뀌는 순간 왠지 감정적이고 날카로운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


예를 들어 4화를 보면...
릿카는 아카네랑 친해지고 싶어서 계속 아카네와 대화를 시도하지만 아카네는 난 잘 모르겠는데? 식의 답변으로 대화를 중단해버리고, 당연히 같이 앉을거라고 생각해서 옆자리를 비워둔 릿카를 무시하고 릿카 뒤에 앉음

그리고 이 대사
초반 아카네와 릿카의 패턴은 항상 이런 느낌이었음
1. 릿카가 아카네에게 호감을 갖고 먼저 접근
2. 아카네는 릿카에게 유타 얘기만 함 (릿카는 아카네와의 관계 발전을 원하는데 아카네는 그걸 알면서도 방어적으로 굴어서 대화를 중단시키거나 화재를 유타로 돌림)
3. 갑분싸

그치만 제일 중요한 건 그럼에도 계속 아카네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릿카.
지금 생각해보면 초반의 아카네의 저 태도는 견제나 눈치주기같은 느낌이 아니라... 아카네는 릿카를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좋아해주는 친구' 정도로 설정하고, 그 외의 인물들도 뭐가 됐든간에 자기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는데
그리드맨 동맹이 생기고서 괴수 관련으로도 인간관계 관련으로도 자기가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아서 자기도 모르게 나와버린 행동일거고,
그 때문에 순간순간 릿카와의 친목을 위한 감정적 교류보다는,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단서를 릿카에게서 찾아내려고 한 말이 '릿카한테 눈치를 준다' 고 비춰진게 아닌가 싶음...
그리고 아카네 성격 씹스러우니까... 호감있는 상대여도 자기 기분 나쁘면 지랄해도 이상하지 않음
어쨌든 아카네에게 있어서 초반에 릿카의 모습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 (릿카의 역할이 아카네의 감정 쓰레기통이었든, 그리드맨 동맹의 정보를 캐낼 수단이었든 간에.) 였고,
릿카는 자기가 정한 설정대로 무슨 행동을 해도 얌전히 자신의 존재를 긍정해주기만 하면 되는 존재였을 거다
마치 순종적인 마누라처럼...

그래서 거의 마지막 직전까지 아카네는 릿카를 철저히 도구로 대한다
역시 좋아,릿카는=릿카는 다루기 편해서 좋아ㅇㅇ
9화 아카네의 상상 속에서 우츠미, 유타랑 썸씽이 있던 것도...
그게 아카네의 진짜 바람이라기보단 자기를 중요하게 생각해주는 존재가 가까이 있었으면 해서였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성우들도 아카네랑 릿카는 남성 캐릭터보다 서로한테 더 관심을 갖고있다는 느낌으로 연기했다고도 하고)
어쩌면 초~중반까지 릿카의 존재도 아카네에겐 비슷했을 것...

철저히 자기가 계획하고 설계한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할지 다 알고있다는 듯 위에서 깔보기도 한다
그리드맨 동맹 세 사람만 그런게 아니라 자기가 만든 세계의 그 어떤 인간도 아카네에겐 이런 존재였다
아카네가 처음부터 릿카를 제일 특별하게 여겼을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음
정말 릿카를 제일 특별하게 여겼다면 미소녀에 몸매도 좋고 주변 사람들이 다 우러러본다는 설정은 자기가 아니라 릿카에게 줬겠지
그리고 이건 아카네는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쏠리는 걸 너그럽게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하지 않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런 아카네의 성격적 결함은 아카네가 릿카가 사는 세상의 '신' 이기에 더 극대화된다
현실에서 도망친 사람이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법을 알 리가 없음
어떤 형태든 사람과 특별한 관계가 된다는 건 항상 일방적인 게 아니라 서로 오고가는게 있어야 하는데, 그걸 모르니까 자기가 제일 잘난 세상에서 모두가 자기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해버린다
그렇게 하면 편하니까

하지만 그렇게 얻은 관계가 소중할 리가 없다
그래서 아카네는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유타를 찌르고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릿카가 다가왔을 때도 자기 자존심을 먼저 내세우고 기껏 자기를 찾아와준 릿카를 밀어낸다
실은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아카네는 자존감도 낮고 불안정한 상태였으니까 릿카가 자길 동정한다고 생각해서 밀어낸 게 아니었을까
자신이 그렇게 설정한것만 아니었다면 어짜피 아무도 자길 신경쓰지 않으니
자기만 없으면 다들 아무렇지 않은 듯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거라는 생각에...

아카네의 설계대로라면 이 상황에서는 아카네가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하지만 (아카네의 속마음이 어땠든) 릿카는 자기 의지로 신을 구원한다
신인 자기보다 성숙한 릿카의 모습에 아카네도 놀라지 않았을까 싶음

하... 눈물나 시발
쭉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카네를 정말로 사랑하고 아끼기에
아카네의 앞으로의 삶을 위해 놓아주는 릿카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세계에 불완전한 신은 필요 없기에 사라지는 아카네
드디어 감정을 터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지만 서로를 위해 서로를 놓아주는 모습.
릿카는 그저 아카네를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도구로 태어났지만 역설적이게도 마지막에는 자기를 만든 신을 구원했고
그 신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아카네와 릿카의 관계는 여성끼리니까 더 아름답게 보이고 와닿는 것 같다
실제로 저 나이 때는 이성보단 동성 친구가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아무래도 여성끼리 감정적 교류가 더 잘 되는것도 있고
남자와 여자의 관계였다면 릿카와 아카네가 보여준 서사가 그저 '이성간의 사랑' 이라는 결말을 위한 장치로만 비춰질 것 같아서 백합이다 아니다를 따지기 전에 여성캐릭터 두 명을 이런식으로 조명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릿카가 준 카드케이스를 들고 현실로 돌아가는 아카네

마지막화 제목이 각성인데, 1화의 제목과 연결됨과 동시에 안티의 각성을 뜻하기도 하지만
또 아카네의 성장을 의미하는 제목이기도 한것 같다
이걸 전부 보고 엔딩을 들으면 말로 다할수없는 오타쿠뽕이 차오름... 근데 다들 오프닝을 더 좋아하더라 오프닝은 그냥 그리드맨의 표면적 내용만 대충 설명할 뿐이고 이 작품의 진짜 내면은 엔딩에 있는데 대체 왜...

아무튼... 그리드맨에는 이런 깨알같은 요소가 많이 들어있어서(오마주라던지...) 여러번 보면서 숨겨진 연출이나 장치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열혈액션물을 원하는거면 ㅁ보지마세요 그걸 기대하고 보면 이 애니에서 아무것도 얻을게없음
세계관에 대한 설명도 불친절하고.. 어떻게 보면 흐지부지 끝냈다는 느낌이 강한데... 그리드맨은 에반게리온처럼 (이 애니를 에바에 비비는건 좀 오바같긴 한데 뭐에 비유해야할지 잘 모르겠음;) 큰 내용이나 세계관보다는 인물간의 관계, 심리묘사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고
스토리도 시청자가 알기 쉽게 내용에 녹여내 전달하기보다는 잠깐 스쳐지나가는 연출이나 소품 등으로 떼우는 경우가 많아서 무작정 '스토리를 이해하겠다' 는 마인드로 보기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즐기세요... 이 애니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그리고 곧 시즌 2도 나온다는데 까놓고 말하자면 정말 하나도 기대가 안 됨...
나는 아주 씹타쿠를 겨냥한 씹타쿠 전용 애니나 게임이 아니면 (불휘고네 같은 거) 작품 자체에서 동인내가 나는게 너무 싫은데...
하다못해 그리드맨은 그림체는 동인내나지만 캐릭터 생김새는 그래도 정석적이고 심플한 디자인이었는데,
이건 캐릭터가 너무... 남초딩이 나루토같은 열혈물 보고 혼자 공책에 끄적인 만화에 나올것처럼 생겼음...
그래도 욕하면서 보긴 보겟죠 볼만한 애니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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